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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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코스 2일차

  • 호텔 (조식) → 한큐 우메다역 → 아라시야마 → 금각사 → 니조성 → 귀무덤 → 청수사 → 기온 → 오사카

교토

'일본의 경주', '천 년의 고도'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은 교토는 경주처럼 관광지가 많다.

그러므로 교토를 하루만 다니기엔 다소 아쉽다.

시간적인 여유가 된다면 3일 정도 교토에 머무르며 교토역을 중심으로 서쪽, 동쪽, 남쪽으로 나눠 관광해야 그나마 유명 관광지를 다 볼 수 있다.

  • 아래 추천 코스는 다소 빡센 빠듯하므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우메다역(또는 연결된 오사카 역에선 JR 이용)에서 늦어도 8시에는 출발하자.
교토시 공식 여행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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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시야마

嵐山

현지에서 유명한 아라시야마는 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별장지로 개발이 되었으며, 154m의 목조 다리인 '도게츠교 (渡月橋)'는 아라시야마의 상징이다.

교토 아라시야마
아라시야마의 야카타부네(지붕이 있는 배)

특히 가을 단풍철(11월 중순 ~ 12월 초)에는 숙박비가 평소의 배가 될 만큼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며, 최근 TV에서 많이 나오는 대나무숲 치쿠린(竹林)도 여기에 있다.

도게츠교

渡月橋

아라시야마 도게츠교

9세기 경에 놓인 이 다리는 1259 ~ 1274년부터 도게츠교(渡月橋)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에는 당연히 나무로만 만들었겠지만 1934년에는 콘트리트 구조의 토대로 편백나무로 다시 지어진 다리로 아라시야마의 상징이다.

치쿠린 & 죽림

嵐山竹林

치쿠린
치쿠린

도게츠교와 함께 아라시야마의 두번째 상징인 치쿠린은 구글맵에 보면 아라시야마 치쿠린(竹林)과 아라시야마 죽림이 따로 명시가 되어 있다.

죽림(竹林)을 일본어로 읽으면 치쿠린이 되는데 그 차이는 아래와 같다.

  • 치쿠린: 제대로 된 대나무 숲
  • 죽림: 철도길과 대나무
치쿠린 위치죽림 철도길 위치

텐류지

天龍寺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텐류지는 고다이고 덴노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찰로 일본에서 최초로 사적·특별 명승으로 지정된 정원인 '소겐치 정원 (曹源池)'이 있으며, 오호조(大方丈)에서 바라보면 마치 액자에 소겐치 정원을 담긴 그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법당 천장에 구름을 탄 용의 모습을 그린 운룡도(운류즈, 雲龍圖)가 인상적이다.

  • 영업시간: 08:30 ~ 17:00
  • 소겐치 정원만 관람시 고등학생/어른 500엔, 중학생/초등학생 300엔, 미취학 아동 무료
  • 소겐치 정원 + 오호조 사찰 입장시 위 요금에 300엔 추가
  • 법당 운류즈(雲龍図) 관람시 500엔 추가 / 토,일, 공휴일만 공개 (봄ㆍ가을은 매일 공개)
위치홈페이지

기모노 숲

キモノフォレスト

아라시야마 란덴 역 주변 기모노를 만드는 옷감으로 역광 기둥 600개를 세워 둔 곳이다.

마치 기모노라는 나무로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숲이 되었다는 뜻으로 '기모노 숲'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낮에 가는 것보단 일몰 후 조명이 들어왔을 때 가는게 좋다.

  • 야간 조명은 일몰부터 21:00 까지
위치자세히 보기

사가노토롯코 열차

嵯峨野トロッコ列車

아라시야마의 계곡을 따라 달리는 관광 열차이며 매년 3월부터 12월까지 운행한다. 별도의 예약을 하지 않으면 (특히 단풍 시즌인 매년 11월 중순 ~ 12월 초) 탑승을 못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출발 한달 전 오전 10시 인터넷으로 예약 가능하니 이용할 계획이라면 좌석 오픈 되는 시점에 바로 예약하는게 좋다.

만약 온라인으로 사전 예약하지 못해도 현장에서 당일권을 판매하고 있으므로 자세한건 아래 '티켓 구입 방법' 에서 확인 가능하다.

  • 편도 성인 880엔 / 어린이 440엔
홈페이지티켓 구입 방법인터넷 예약

금각사

金閣寺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금각사의 정식 명칭은 '로쿠온지(鹿苑寺)'이지만 금으로 입힌 누각으로 인해 '금각사 (金閣寺)'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1956년에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라는 소설로 인해 유명해졌다.

1955년 복원 시 실제 금 20kg의 금박을 입혔다고 한다. (현재 가치 약 10억원)

금각사와 관련해 재미난 설

  • 누각 아래의 연못은 금물이라는 설
  • 금을 바른 금각사가 있으니 은(銀)으로 만든 은각사를 세우려 시도했지만, 금처럼 발라지지 않아 누각은 나무 목조 그대로 두고 이름은 '은각사'로 붙였다는 설
금각사
20kg의 금박을 입힌 금각사
  • 영업시간: 09:00 ~ 17:00(연중무휴)
  • 입장료
    • 고교생 이상 어른 500엔
    • 초, 중학생 이상 300엔
위치홈페이지

니조성

二条城

니조성(二条城)의 성(城)은 일본어로 죠-라고 읽기 때문에 흔히 니조죠라고도 부르는 이 성은 교토에서 유일하게 절과 신사가 아닌 성으로써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니조성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공식 거처이자 권위의 상징이다.

특히 유심히 봐야 하는 건 '나이팅게일 마루'인데 나무 복도를 밟으면 소리가 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눠 만들어 내부인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 마루를 밟고 다녔고, 이를 모르는 외부인들이 소리가 나는 마루를 밝으면 침입자가 온 것으로 판단하여 대처하기도 했다.

이 마루에서 나는 소리가 마치 새의 한 종류인 '나이팅게일' 새 소리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니조성
  • 영업시간: 08:45 ~ 17:00 (16시 최종 입장)
  • 휴무일: 12/29 ~ 12/31
    • 혼마루(본성), 니노마루 휴관일이 각각 다르므로 아래 홈페이지에서 확인
  • 입장료
    • 입장권: 성인 800엔, 중고생 400엔, 초등학생 300엔
    • 입장권 + 니노마루: 성인 1,300엔, 중고생 400엔, 초등학생 300엔
    • 혼마루(사전 WEB 예약, 입장권 별도): 성인 1,000엔, 중고생 300엔, 초등학생 200엔
위치홈페이지

귀무덤

耳塚 (鼻塚)

귀 무덤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분들이라면 '교토 관광지에 웬 무덤?'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이 귀 무덤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기도 하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이 길어져 일본군의 사기가 떨어지자 조선인의 목을 베어 오면 거기에 대해 포상하여 사기를 높이고자 했다.

이에 일본군은 조선군과 민중의 목을 베어 갔지만 아무래도 목은 무게가 있어, 이를 귀로 바꾸었다.

그러나 귀는 두 개이다 보니 죽은 사람이 한 명인지 두 명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 다시 코(鼻)를 베어 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렇게 잘려 나간 코는 소금에 절여 일본에 가져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일이 감사장을 써서 보내주었고, 이를 자랑스레 보여주며 일본 전국 순회를 한 후 교토에 묻었다고 한다.

포상에 눈먼 일본군들은 조선군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코를 베기도 했으며, 그것도 살아 있는 사람의 코를 베어 '눈 뜨고 코 베인다'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는 설이 있으며, 실제 지봉유설(1614)에는 코가 잘린 채 살아가는 조선인이 많았다고 적혀 있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일본군은 말 그대로 무서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귀와 코를 베어 간다고 해서 귀 이(耳), 코 비(鼻)를 붙여 일본군을 '이비'라고 불렀고, 일본군들이 보이면 '이비야 이비야'라고 불렀던 것이 점점 '에비야 에비야'라고 부르게 되어,우는 어린아이들 달래기 위해 '울음 안 그치면 호랑이가 잡아간다'처럼 '에비야 에비야'라고 했다는 설이 있으며 이런 부분이 아직 남아 있어 아기들이 안 좋은 것을 할 때 '에비에비~' 라고 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런 조선인들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명량해전에서 대패하고 진도 앞바다에 떠내려온 일본군 시신 100 여구를 고향이 잘 보이고 양지바른 곳에 무덤을 만들어 준다.

그곳이 바로 '왜인(일본인)에게 덕을 베풀었다.'라고 해서 붙여진 진도에 있는 '왜덕산' 이다.

귀 무덤은 교토에만 있는 게 아니라 오카야마현 츠야마 시에도 발견되었으며, 현재 일본이 추가 조사를 하지 않아 얼마나 더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2009년 총리에 취임한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21년 11월 오카야마현 츠야마의 귀무덤 위령 행사에 참여 하기도 했으며, 2022년 9월에는 왜덕산 무덤을 방문해 분향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전인 2015년 8월에는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 유관순 열사가 수용되었던 감방에 헌화를 하며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숙이며 절을 하며 일본식으로 사죄하는 도게자를 하기도 했다.

귀 무덤은 원래 코 무덤(鼻塚)이라 불렀지만 이름이 너무 야만스럽다고 하여 귀 무덤(耳塚)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코 무덤이 맞다.

약 12만 6,000여명의 한이 서려져 있으나 한국, 일본에서도 별도의 예산 지원이 되지 않아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인 시미즈 상이 귀 무덤 바로 왼쪽 집에 살며 2대 째 관리했다.

'내가 죽거든 내가 살던 이 집을 재일교포가 살게 해라'라는 시미즈 상의 유언대로 지금은 재일교포가 '까치네 집'으로 이름을 짓고 생활하며 귀 무덤을 관리하고 있다.

위치는 유감스럽게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받드는 도요쿠니 신사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어느 놀이터 옆에 있다.

그리고 귀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돌기둥에는 막부 시절 조선정벌을 소재로 한 가부키 (공연극)을 한 공연장, 배우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교토 방문 시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굳이 여행 왔는데 무덤을 가야돼?'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찾아가진 않더라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고 마음 한편으로는 가슴 아파했으면 하는 바람이며, 이런 곳을 잊고 살아간다면 과연 우리가 일본에게 사죄를 요구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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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사

清水寺

헤이안 시대의 대표적인 두 인물로는 문신으로는 스가와라 미치자네 (큐슈에 다자이후텐만궁에 학문의 신으로 모셔져있음), 무신 으로는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가 있다.

무신인 다무라마로는 간무 덴노의 총애를 받았는데, 그는 백제계 도래인의 후손으로 798년에 청수사(기요미즈데라)를 지은 인물이다.

다무라마로가 출산 후유증을 앓고 있는 아내를 위해 임산부에 좋다는 사슴을 사냥하러 산으로 갔다가 사슴을 잡고 내려오는 길에 불경 읽는 소리가 들려 길을 따라가니 그 곳에서 엔친 스님을 만나게 된다.

엔친 스님은 다무라마루에게 어떤 장로가 십일면천수 관음상을 봉안하라고 했다고 하며 여기에 절을 세우기 위해 수행 중이었다고 말한다.

다무라마로는 이 이야기를 아내한테 전하며, 사슴고기를 먹은 아내는 건강을 회복하지만, 살생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것에 참회를 느끼고 남편인 다무라마로에게 절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이에 남편 다무라마로는 엔친 스님과 함께 지금의 기요미즈데라를 짓게 된다.

또한, '십일면천수천관세 음보살' 상을 만들어 봉안했고, 기요미즈데라는 이후 임산부의 안산(安産)을 기원하는 절로도 유명해지게 된다.

이런 기요미즈데라도 1467년의 오닌의 난 때 화재로 소실되지만 도쿠가와가의 에도막부 제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를 통해 재건된다.

재건 당시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기 쉽지 않았는데, 이때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하는 비불(秘佛)인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대중에게 공개하여 비용을 충당한다.

현재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일반인에게 공개가 되어있지는 않으며 33년에 한 번씩 그 모습이 공개된다.

최근에는 2000년에 공개가 되었으니 다음은 2033년에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청수사 본당은 큰 무대로 만들어졌으며 무대 난간에서 떨어져 살아 남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설이 있지만 실제로 1694년부터 170년 동안 234명이 실제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되어 일본에서는 '기요미즈의 무대에서 뛰어내릴 생각으로…' 라는 말이 있으며 '죽을 각오를 다 한다' 는 말로 해석이 된다.

본당 뒤편에 있는 지주 신사는 연인들의 점 쳐주는 곳으로 젊은 여성들과 연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코이우라나이노이시(恋占いの石)라는 큰 돌멩이 두 개가 10m 간격을 두고 있고, 한쪽에서 눈을 감고 다른 한쪽까지 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설이 있기도 하니 연인들끼리 간다면 꼭 한번 해보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성공하지 못한다면 서로에게 너무 나무라지 말자. 실제 해보면 은근히 어렵다.

그리고 다무라마로가 마셨다는 오토와 폭포수가 세 개의 물줄기로 나눠져 연못으로 떨어진다.

이 폭포수는 각각 지혜, 연애, 장수를 상징하며 한번에 세개를 모두 마시면 오히려 불운이 따른다는 설이 있다.

아마도 한 번에 많은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이 외에는 다무라마로의 부부에게 제사를 지내는 개산당과 다무라마로가 잡은 사슴의 묘인 녹간총 등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추가로 설명하면 사전에 언급한 청수사를 지은 사람은 백제계 도래인의 후손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이다.

이 다무라마로는 간무 덴노의 총애받으며 동북 지방의 에미시 세력을 물리쳤고, 이후 동이 대장군으로 임명되기도 하며 그의 딸은 간무 덴노의 비가 되었다.

백제계 도래인의 후손이 기요미즈데라를 만들었다고 해서 이게 우리나라 사람이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지금의 재일교포와는 다르게 그 당시의 도래인들은 3, 4세대가 되고, 그때는 이미 백제라는 나라가 없어진 후이기 때문에 이미 일본에 동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들이 백제에서 받은 영향과 현지에서 살던 문화를 복합적으로 재해석해 자기만의 문화로 만들었음을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거기에 일본인들도 역사를 숨기거나 왜곡하지 말고 백제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2019년 자기 아들인 나루히토에게 일왕을 자리를 물려준 125대 일본 일왕인 아키히토 왕은 간무 덴노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된 사실에 대해 '나는 한국과의 깊은 연을 느낀다.'라고 하기도 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 영업시간: 06:00 ~ 18:00 / 18:30 (계절별 상이/연중무휴)
  • 봄가을 야간 특별관람 기간 밤 9시까지 / 여름 야간 특별관람 기간 밤 9시 30분까지
  • 입장료: 고교생 이상 성인 400엔 / 초, 중학생 200엔
위치홈페이지입장시간 확인

산넨자카, 니넨자카

三年坂, 二年坂

산넨자카는 46개, 니넨자카는 17개의 돌계단으로 만들어졌고, 그 양쪽으로는 전통가옥의 기념품 가게와 식당이 즐비한 교토의 숨은 관광명소이다.

산넨자카

이 산넨자카에서 오르내리다 넘어지면 3년 안에 죽는다는 속설도 있다.

만약 넘어졌다면 너무 상심하지 말자.

언덕 아래에 있는 상점에서 호리병을 사서 지니고 있으면 죽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알고 보면 영업 상술?)

산넨자카와 니넨자카 사이에 아래 야사카탑이 있으므로 니넨자카 내려가기 전에 야사캅탑을 보고 내려 가야 한다.

산넨자카 위치니넨자카 위치

호칸지의 야사카탑

八坂塔

일본에서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쇼토쿠 태자(聖徳太子)가 불교의 전파를 위해 3개의 절을 창건했다. (쇼토쿠 태자에 대해서는 오사카 시텐노지에서 자세히 확인 가능)

  • 오사카에 있는 시텐노지(四天王寺)
  • 우리나라 국보 38호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 똑 닮은 일본 국보 1호 목조 미륵보살반가상이 있는 교토의 고류지(広隆寺)
  • 교토 히가시야마(東山)에 있는 호칸지(法觀寺)
야사카탑

현재 야사카탑이 있던 호칸지는 불타 없어지고 고구려의 도래인 이리지(伊利之)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야사카 탑만 남아 있으며, 일본 전국시대 때에는 이 지역을 차지하면 가장 빨리 야사카 탑에 올라 자기 진영의 깃발을 세웠다는 상징적인 곳이기도 한다.

이곳이 일본에서 가장 일본다운 거리로 뽑히며, 교토의 전통적인 거리 사이로 불뚝 올라선 야사카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 않으면 다소 아쉬운 교토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야사카 탑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내부를 들어갈 수 있는 탑이지만 오후 4시까지만 입장할 수 있어 만에라도 들어갈 계획이 있다면 기요미즈데라를 비롯한 야스카 신사, 기온거리 일정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

위치

기온

祇園

교토의 마지막 일정은 '기온'이다.

기온을 가장 마지막에 넣은 이유는 기요미즈데라가 다른 관광지에 비해 그나마 늦게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게이샤를 보려면 저녁때 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야사카 신사'는 24시간 언제든지 입장이 가능하므로 교토의 마지막 일정으로 적합하다.

기온

기요미즈데라도 고대 한국과 연관이 있듯이 기온 또한 우리나라와 연관이 되어 있으며, 그중에 대표적인 게 바로 '야사카 신사'이다.

야사카 신사

일본에서 '우두천왕(牛頭天王)'으로 불리는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일본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 일본에서는 '역병을 쫓아내는 신'으로 불리며, 일본 열도를 창조한 신의 이자나기의 아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격이 제멋대로라 신의 세계에서 추방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추방되어 인간 땅에 내려온 곳이 '신라(新羅)의 소시모리(曾尸茂梨)'라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럼 신라의 '소시모리'는 어디일까?

소시모리는 한국어의 '소의머리'와 비슷한 것처럼 소머리를 의미하는 우두(牛頭)로 풀이된다.

강원도 춘천에는 우두산이 있으며, 이에 따라 춘천 옛 이름이 우수주(牛首州) 또는 우두주(牛頭州)라고 불려 춘천의 우두산을 소시모리라는 설이 있다.

그래서 일본 강점기 때 일본은 여기에 '강원 신사' 를 지었지만, 해방 후 정문을 비롯해 원형 그대로 보존한 채 호텔로 사용되었고 한때 드라마로 인해 일본인들이 많이 찾던 남이섬과 더불어 당시 인기 관광지였다고 한다.

야사카 신사

당시 9세기 때 전염병이 돌아 역병을 쫓아내기 위해 고구려에서 온 사신 '이리지 (伊利之)''신라(新羅)의 우두산(牛頭山)에 있는 신을 교토에 모시고 와 제사를 지냈다' 라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렇게 신에게 역병을 잠재워 달라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을 전달한 이리지는 왕실로부터 八坂造ㆍ야사카노미야쓰코 성을 받고, 이런 문화가 점점 번져져 전국 각지에 수천 개의 신사가 생겨 야사카 신사가 신사의 총본사(總本社)가 된 것이다.

또, 제사를 지내며 행렬을 한 게 지금의 일본 3대 마츠리인 기온 마츠리의 시초가 된 것이다.

마츠리(祭り)를 지금은 '축제'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마츠리의 동사형인 마츠루(祭る)는 '제사를 지낸다.', '혼령을 모시다'라는 뜻이 있어 당시에는 '제사' 라는 의미가 더 컸을 것이다. (한국어의 '맞으리'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럼 왜 '기온'이라는 지명이 되었을까?

1868년 신사와 절을 분리하는 '신불 분리형'이 있기 전에는 야사카 신사를 기온진자(祇園神社), 기온샤(祇園社), 기온칸신인(祇園感神院)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는 신라 진흥왕 27년(566년) 때에 지은 기원사(祇園寺)와 실제사(實際寺)가 창건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의 기원사에서 '기온' 이 유래 되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한, 야사카 신사 입구에 보면 많이 본 듯한 석상이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 해태와 닮은 이 석상은 '고마이누(狛犬)' 라고 부르는데 '고마(狛)' 는 고구려에서 온 물건을 지칭하며, 일본에서는 고구려를 구(句)를 뺀 高麗(고려)라고 쓰고 '고마' 라고 읽는다.

고마이누는 우리나라 삽살개와 닮기도 했다.

귀신이나 액운(살)을 쫓는(삽) 뜻을 가진 삽살개를 신사 앞에 석상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이렇듯 일본은 고대 한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우리는 그들이 만든 고유한 문화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영업시간: 24시간 개방
  • 입장료: 무료

하나미코지도리

일명 게이샤의 거리라고 불리며 가장 예스러운 일본의 거리로 손꼽힌다.

18~19세기 교토의 전통 목조 가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전통가옥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전신주, 전선이 모두 땅으로 매설되어 있어 깔끔한 옛 교토를 느낄 수 있다.

저녁때 도착해서 운 좋으면 출근하는 게이샤를 볼 수도 있다.

게이샤를 보더라도 무리하게 사진 촬영을 요구하거나 몰래 찍거나 하는 일은 투어캐스트를 보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하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하나미코지도리

오사카로 이동

이것으로 교토 1일 추천 코스는 완료되었다.

일정이 다소 빠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오사카에서 조금 일찍 출발한다면 무리가 없는 일정이다.

야사카 신사 관람이 마쳤으면 서쪽으로 이어진 기온 메인거리(하나미코지도리)를 즐기며 가와라마치역까지 걸어가면 된다. (약 12분)

가모 강

하지만 가는 도중 기온시조(祇園四条) 역이 나오는데 헷갈리지 말고 가모 강 다리를 건너 나오는 역이 한큐 선을 탈 수 있는 가와라마치(河原町) 역이며, 한큐선을 타고 한큐 우메다 역으로 이동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