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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나가사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첫번째가 '나가사키 짬뽕', 두번째가 '원자폭탄', 세번째가 '카스테라'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에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 핵폭탄 투하로 27만 명이 피폭이 되고 7만여명이 사망하였고 조선인도 2만 명이 피폭되고 1만명이나 사망하였다고 한다.
목이 말라 참을수 없었습니다.
물에는 기름으로 더러워졌습니다.
근데 너무나 물이 마시고 싶어 결국 기름이 뜬 물 그대로 마셨습니다.
- 나가사키 평화공원 평화의 샘에 적힌 문구 중에서
영화로도 나왔던 '군함도' (하시마 섬)에 끌려간 강제 징용자들이 나가사키 원폭 후 일본인 대신 피폭되면서 잔재들을 처리했다고 하니...우리에겐 너무나 슬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이 또한 불과 80년 전 이라니...
1970년 히로시마에는 한국인 위령비가 세워졌지만 그 동안 정치적인 문제로 나가사키에는 위령비를 못 세웠지만 지난 2021년 11월 6일에 76년만에 세워졌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에)
그리고 400년전 나가사키 현 쓰시마(대마도)를 통해 부산에서 출발한 조선통신사 행렬이 들어오게 된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끝난게 1598년이고 불과 10년이 지나지 않은 1607년 조선통신사 행렬이 시작된다.
10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조선은 왜 일본에 통신사를 보냈을까?
그리고 왜 부산에서 가까운 쓰시마로 가지 않고 나가사키로 돌아서 갔을까?
조선통신사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히데요시는 전란 중에 사망하게 되며 그가 죽자 조선에 있던 일본군에게 철수 명령이 떨어진다.
전쟁에 이겨 조선 영토를 보상 받기로 한 임진왜란에 참여했던 일본군은 도요토미히데요시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귀국하자 친 도요토미 세력과 부딪히게 되며 도요토미 죽음의 계기로 최고의 권력을 가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찾아 화친을 맺게된다.
친 도요토미 세력인 서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력의 동군이 1600년에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바로 이 전투가 세키가하라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잔재를 없애고자 도요토미히데요시의 무덤을 폭파한다.
- 그 당시 임진왜란 제 1선봉장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순천, 제 2선봉장인 가토 기요마사는 울산, 일본 최고 전투력을 가진 사쓰마번의 시마즈 요시히로는 사천에 각각 왜성을 쌓고 조명 연합군과 싸우며 버티고 있었다.
- 히데요시의 죽음에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가토 기요마사는 일본 원군의 지원으로 겨우 살아 돌아가고 사천에 있던 시마즈는 그냥 배타고 귀환하면 되고 고니시는 순천 앞바다에 이순신 장군이 버티고 있어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였다.
- 이에 고니시는 시마즈에게 지원 요청을 하며 같이 이순신 장군을 공격하자고 약속한다.
- 정유재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일어나고 시마즈 군과 이순신 장군 그리고 명나라가 시마즈 군과 싸우는 동안 고니시는 히데요시의 아들인 히데요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마즈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귀환을 해버린다.
- 이순신 장군은 단 한 척의 배도 일본에 돌려보내면 안 된다고 하면서 끝까지 맞서 싸우며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시마즈는 겨우 살아 남아 돌아갔다고 한다.
- 약속 안 지킨 고니시의 평판이 안 좋고 그 밑에 부하들 조차 떠나는 상황이고 노량해전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시마즈는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2000명 정도만 참여하게 된다.
- 이런 고니시, 시마즈가 세키가하라 전투 때 서군으로 참여해 동군한테 패하게 되어 노량해전이 일본의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된다.
이 이후 도쿠가와는 조선에게 국교 재개를 요청한다.
임진왜란 당시 도쿠가와는 단 한명의 일본군을 파견하지 않고 도요토미 무덤을 폭발한 사실이 조선에 알려지자 그 당시 조선의 왕이였던 선조는 1607년 일본의 요청을 받아 들인다.
처음 조선 통신사가 파견된건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의 이름으로 일본 내정 탐색과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인 포로 송환 목적이였다.
그 당시 조선인 포로는 도자기 만드는 도공들이 많았고 후쿠오카에 많이 거주 했기 때문에 도공 기술이 필요한 일본에서는 이런 부분이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일본은 조선통신사를 후쿠오카로 입항 시킨게 아니라 나가사키 현의 쓰시마섬(대마도)로 입항시키고 후쿠오카 현 키타큐슈 쪽의 작은 섬인 아이노시마(藍島)를 통해 오사카까지 가게 한다.
하지만 이런 도공들은 실력을 인정받고 일본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고 그 당시에 조선으로 귀국하면 일본을 도왔다는것 만으로 처벌을 받는다는 소문이 있어 다시 일본을 떠나는걸 꺼려했다고 한다.
실제 조선통신사를 통해 귀국한 조선인 포로는 전체 인원 중 약 10%인 8천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조선에서의 천민 생활보다 일본에서 인정받는 장인으로써의 삶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방법
나가사키 관광은 반나절 일정으로는 다소 짧은 감이 있으며 일본 3대 야경이라 할 수 있는 나가사키 야경을 보기 위해서는 하루 일정으로 짜는걸 추천한다.
후쿠오카에서 숙박을 하며 당일 치기로도 가능하며 숙소를 옮기는 여행객은 하우스텐보스와 같이 묶어 하우스텐보스 관광하고 나가사키로 이동해 나가사키 구경 후 숙박하고 다음 날 나가사키 시내를 둘러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일정을 짤 수 있다.
이동방법
열차로 이동
- 특급 릴레이 카모메(特急リレーかもめ)열차를 타고 타케오 온천역에서 신칸센으로 환승 후 나가사키 역 하차(약 1시간 40분)
- 여기서 문제!!
- 아래 이미지에서 어떤 표를 구매를 해야 될까?
- '데지마/나가사키 공자묘ㆍ중국 역대박물관/그라바엔'에 입장할 예정이라면 이미지 상의 '갈매기로 세계로!? 나가사키 티켓' 인 4,300엔짜리 를 구매하면 되고, 그게 아니라면 3,200엔 짜리를 구매 하면된다.
- 단, 구매 후 변경불가 조건
- 자세한 내용은 '레일패스, 열차 시간 조회 & 예매' 에서 확인
버스로 이동
유용한 패스
전차 1일 승차권
나가사키의 주 관광 교통으로는 노면전차가 있으며 구간에 상관없이 1회 탑승시 140엔이다.
이 노면전차만 다녀도 나가사키 주 관광지를 다닐 수 있으며 전차 1일 승차권이 600엔이므로 5회 이상 타지 않는다면 그 때마다 돈을 내는게 유용하다.
1일 승차권 패스는 차내에서는 팔지 않으며 관광 안내소 및 발매소가 있는 정류장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앱으로도 구매가 가능하며 앱에서 구매할 경우 1일 승차권 600엔과 24시간 이용가능한 승차권 700엔을 구매할 수 있다.
- 현금으로 지불시 140엔 딱 맞춰서 넣어야 하고 동전이 없는 경우 정산기에서 교환 후 정확히 맞춰 넣으면 된다.
- iC카드 이용시
- 2구간 이내라면 성인 100엔에 탑승
- 신치 중화가, 시청, 나가사키역 앞, 니시하마초 정류장에서는 무료 환승
- 매월 세번째 일요일은 초등학생 어린이 이하 무료 탑승의 날
- 승차권 구매 가능한 애플리케이션
추천코스
나가사키 26 성인 순교지
日本二十六聖人記念館
천주교가 일본에 전파된건 1549년 포르투갈 하비에르 선교사가 남큐슈의 가고시마로 들어오면서 부터이다.
이듬해인 1550년 하비에르는 나가사키현 히라도를 찾아 각 지역의 영주들이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면서 빠르게 전파가 된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사농공상' 의 신분제도 정책을 펼치며 이에 반하는 '하늘 앞 모든 인간은 평등' 함을 강조하는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다.
결국 1597년 2월 도요토미의 '천주교 금교령'에 의해 일본인 천주교 신자 20명과 외국인 신자 6명가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를 당한다.
이후 도요토미가 죽고 도쿠가와가 정권을 잡은 17세기에는 천주교 박해가 절정에 다다르며 그리스도 신자와 일반인을 구분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나 성모 마리아를 조각한 '후미에(踏み絵)' 를 만들어 그 위를 밟지 않으면 처형하기도 한다.
하지만 목숨을 지키기 위해 후미에를 밟고 불교도인 것처럼 위장한 채 살면서 남몰래 회개하고 공동기도를 하며 신앙을 지키기도 한다.
26명 순교지에 대해서 불명확했지만 1947년 지금의 나가사키 역 앞 니시자카(西坂)로 확정되고, 26인 순교자가 시성(諡聖) 100년 기념이 되는 1962년에 기념비와 기념관을 세우고 니시자카 공원을 조성하였다.
- 영업시간 09:00 ~ 17:00
- 휴무일: 12월 31일 ~ 1월 2일
- 입장료: 성인 500엔, 중고등학생 300엔, 초등학생 150엔
- 기념비는 니시자카 공원내에 있으므로 무료
나가사키 평화공원
長崎平和公園
나가사키 평화공원은 원폭 희생자의 명복과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으로 매년 조선인 피폭자들을 추도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가사키에는 위령비 없이 초라한 추모비 정도만 있었다.
위령비를 세우고자 시도는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나 우리 입장에서는 '한국인의 강제징용문제와 한국의 식민지 시대의 피해사실' 을 비문(碑文)에 새겨 넣길 원하지만 이런 내용을 넣는걸 원치 않는 일본이 허가하지 않기 때문에 설치가 미루진 것이다.
그러다 2021년 '강제적인 징용 동원' 이라는 문구 대신 '본인의 의사(意思)에 반(反)하여' 라는 문구 넣는 것으로 결정이 되고 그 해 11월 6일 위령비가 세워졌다.
그래도 다행인건 영문으로는 'forced to work - 강제로 노역했다.' 가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늘을 가르치는 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뻗은 손은 평화를 살짝 감은 눈은 원폭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평화기원상' 은 어떻게 보면 다시는 이런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명분으로 만들었겠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공원을 조성했다는건...
어쩌면 '피해자 의식의 상징물' 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 영업시간: 별도로 없음
- 휴무일: 없음
- 입장료: 없음
우라카미 천주당
浦上天主堂
그리스도교도 탄압제가 해제가 되어 자유를 찾은 신자들은 가장 먼저 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교회 건립이었다.
하지만 자금난 때문에 계획을 세운지 20여년이 지난 1895년에서야 시작 되었고 1914년 동양 제일의 벽돌구조 로마네스크 양식 대성당으로서 헌당식이 거행되었다.
정면의 쌍탑에는 프랑스제 안젤라스 종이 설치되었지만 1945년 원폭으로 한개는 종루 채 완전히 날라가버렸으나 한 개는 무너진 건물 사이에 발견되어 안젤라스 종은 지금도 하루에 세번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 영업시간 09:00 ~ 17:00
- 휴무일: 월요일, 공휴일인 경우는 다음 날
- 입장료: 무료
- 미사 시간: 일요일 6:00, 7:30, 9:30 금·토 19:00 월~목 6:00
데지마
出島
외국과의 무역은 하고 싶은데 천주교 전파를 염려한 일본은 '데지마' 라는 인공섬을 만들어 오직 이 곳에서만 무역이 가능하게 했다.
무료 200여년간 무역을 데지마에서만 했으며 처음에는 포르투갈 인들이 격리되어 거주하기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쇄국정책에 따라 영업금지 당한 네덜란드의 무역상사가 이곳으로 이전해왔다고 한다.
데지마 사료관에는 당시 일본에 살던 포르투갈, 네덜란드 인의 생활을 재현한 그림과 도형이 전시되어 있다.
- 영업시간: 08:00 ~ 21:00 (최종입장은 20:40)
- 휴무일: 연중무휴
- 입장료: 성인 520엔, 고등학생 200엔, 초중학생 100엔
신치 중화거리
長崎新地中華街
개항을 일찍한 일본의 항구에는 어김없이 차이나 타운이 있다.
일본 3대 차이나 타운으로 요코하마, 고베의 차이나 타운 보다 더 오래된 곳이다.
쇄국 정책 기간에도 일본은 유일하게 중국과의 무역이 행해진 곳으로 신치 중화거리는 17세기부터 이어지며 다른 지역의 차이나타운 거주자들에게는 느낄 수 없는 중국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짬뽕이 여기로 들어와 나가사키 짬뽕으로 발전되었다는건 두말하면 잔소리!
위치시카이로
四海樓
우리나라 짜장면이 처음 만들어진 '공화춘' 격인 시카이로는 짬뽕으로 건물 세운 곳으로 나가사키 짬뽕을 처음으로 메뉴로 만들어 사용했던 식당이며 말 그대로 원조 중의 원조이다.
5층 건물로 1층은 상점, 2층 짬뽕 뮤지엄, 3층 다목적 홀, 4층 단체좌식 테이블과 연회장, 5층 전망 레스토랑으로 기업 수준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짬뽕은 누가, 언제, 무엇을 만들었는지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요리이다.
1898년 푸젠성(福建省, 복건성)에서 넘어온 '진평순' 이라는 중국인 화교가 만들었다.
진평순은 중국에서 넘어온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밥 먹다' 라는 중국어 '츠판(吃飯)' 을 복건성 사투리인 '챠퐁? - 밥 먹었니?' 이라 했는데 그 뜻을 알 수 없는 일본인들이 자기들 마음대록 해석해 '챠퐁? - 챤뽕으로 줄까?' 라고 해석하여 나온 요리를 보고 '챤뽕(チャンポン)' 이라 불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연히 이 챤뽕이 한국으로 오면서 고춧가루를 넣고 만들며 한국식 발음인 쨤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어로 '챤뽕(チャンポン)' 은 '한데 섞음'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해 일본인들은 짬뽕이 일본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 영업시간
- 11:30 ~ 15:00 (최종입장 14:30)
- 17:00 ~ 20:00 (최종입장 19:30)
- 당일 사정에 따라 조금 더 빨리 닫을 수 있음
- 휴무일: 부정기적
오우라천주당
大浦天主堂
일본 최초의 순교자 26명을 기리기 위해 1864년 프랑스 선교사가 지었으며, 정식 명칭은 '일본 26인 순교 천주당'이다. 현존하는 목조건물의 교회에서 가장 오랜된 건축물로 1933년 국보로도 지정이 되었고, 내부에는 약 100년 전의 프랑스제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 영업시간
- 11월 ~ 2월 08:30 ~ 17:30 (최종입장 17:00)
- 그 외 08:30 ~ 18:00 (최종입장 17:30)
- 휴무일: 교회 행사로 휴관하는 경우가 있음
- 입장료: 성인 1,000엔, 중고생 400엔, 초등학생 300엔 (오우라 천주당 키리시탄 박물관 포함)
그라바엔
グラバ園
1853년 미 해군의 페리 제독의 내항으로 일본은 미국과 미 일수호통상 조약을 맺고 그 다음해인 1858년 열강 제국의 통상무역 요구에 따라 영국 등 5개국과 수호 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에따라 나가사키는 1859년 요코하마, 하코다테 등과 함께 개항을 맞이하게 되고 외국과의 자유 무역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이렇게 일본으로 넘어온 무역상인들은 남쪽의 미나미야마테 쪽에는 주로 주택지를, 동쪽의 히가시야마테 쪽은 영사관들을 세웠다.
이런 외국인 거류지는 1899년 폐지가 되었고 1970년 점점 사라져 가는 서양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일본은 근대화 사회에 커다란 공적을 남긴 스코틀랜드 출신의 '글로버 상회' 를 설립한 토머스 브레이크 글로버의 저택이 있는 곳으로 옮김으로써 그라바엔이 생겨났다.
이 그라바엔은 '사카모토 료마' 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인물로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막부를 무너뜨린 계기를 만든 삿초동맹 결성에 공헌한 인물이다.
그 당시 일본의 육군은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현), 해군은 사쓰마번(지금의 가고시마현)이 주축을 이루었다.
조슈번과 사쓰마번이 손을 잡으면 도쿠가와 막부를 뒤엎을 정도의 힘이 있었지만 둘 관계는 앙숙의 관계였다.
그래서 이를 염려한 도쿠가와 막부는 막부 타도 선봉장의 조슈번에 대해 외국과의 무기 거래를 금지하도록 한다.
이에 조슈번은 최신 무기 도입이 어려운 상황이 되고, 사쓰마는 군량미가 부족한 실정이였다.
사카모토 료마는 사쓰마 이름으로 글로벌 상회로부터 무기를 수입해 조슈번에 되팔고 조슈번은 사쓰마에 군량미를 공급하는 방안을 세워 양측과 교류하며 동맹하게 한 사람이 바로 사카모토 료마이다.
이를 통해 삿초동맹이 결성되고, 사카모토 료마는 본인이 태어난 도사 번의 번주 야마우치 요도에게 대정봉환을 직소할 것을 권유하고 야마우치는 에도 막부 15대 쇼군인 그 당시 최고의 세력가였던 도쿠가와 요시노부에서 '덴노(天皇)에게 국가 통치권을 돌려주라' 고 권고하여 대정봉환을 이뤄낸다.
- 현재상황으로 정리하면 일반 시민이 도지사에게 총리의 국가 통치권을 일왕에게 돌려주라고 요청하고 그 얘기를 들은 도지사가 일본 총리에게 권유한 것이라 보면 된다.
- 영업시간
- 08:00 ~ 18:00 (최종입장 17:40)
- 20:00 또는 21:30 까지 야간 개원 하는 경우도 있으니 홈페이지에서 확인
- 휴무일: 연중무휴
- 입장료: 성인 620엔, 고등학생 310엔, 초중학생 180엔
- 바닥에 깔린 '하트 ❤️' 모양의 2개의 돌을 찾다 실제 구경을 못할 수 있으니 주의, '하트 ❤️' 돌은 메가네바시에도 있으니 그라바엔을 둘러보는데 집중!
메가네바시
メガネ橋
메가네(メガネ)는 안경, 바시(橋)는 다리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안경다리'를 말한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석교로 두 개의 아치형 다리가 아래로 흐르는 물에 비쳐 마치 안경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연인들이 산책하기 좋은 코스이다.
양 옆으로 쌓아 올린 돌 중에 '하트 ❤️'모양의 돌이 있으니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재미이다.
이나사야마 전망대
稲佐山
고베 롯코산의 야경, 하코다테의 야경에 이어 일본 3대 야경이라 하는 나가사키 야경! 이 또한 안 보고 지나칠수 없으리...
입장료가 무료인 이나사야마 전망대에 올라가는 방법은 로프웨이(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방법과 슬로프카로 가는 방법 그리고 걸어 가는 법이 있다.
야경을 보러 갈 때는 해지고 나서 가는 것보다 좀 여유롭게 해가 지기전 오후부터 올라가 해질녘부터 컴컴해질 때 까지 보는걸 추천한다.
그리고 로프웨이, 슬로프카는 날씨 등의 영향으로 운행을 안할 수 있으므로 가기전 홈페이지에서 운행여부를 확인하는게 좋다.
로프웨이 타는 방법
- 무료 셔틀버스
- 무료 셔틀버스(하루 4편)로 나가사키 시내에서 나가사키 로프웨이 후치신사역(長崎ロープウェイ淵神社駅)까지 이동
- 셔틀버스는 당일 자정부터 온라인으로 간단한 인적사항 및 이메일 주소로 신청가능
-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있어도 절대 안 태워주니 셔틀버스 탈 예정이라면 예약 필수!
- 시내버스
- 아래 나가사키 버스 노선 & 시간표 검색 방법 참고하여 로프웨이마에(ロープウェイ前) 버스정류장 하차 후 나가사키 로프웨이 후치신사역까지 도보 5분
- 편도 성인 730엔, 중학생 520엔, 초등학생・유아 410엔
- 왕복 성인 1,250엔, 중학생 940엔, 초등학생・유아 620엔
- 영업시간: 09:00 ~ 22:00
- 휴무일: 연중무휴
- 15 ~ 20분 간격으로 운행 (6월 중순은 정비로 운휴 예정)
슬로프카 & 걸어 가는 방법
- 일반 시내버스로 이나사야마코우엔(稲佐山公園)버스 정류장 하차 후 슬로프카를 타거나 이나사야마 전망대까지 도보 약 15분
- 편도 성인 300엔, 중학생 220엔, 초등학생・유아 150엔
- 왕복 성인 500엔, 중학생 370엔, 초등학생・유아 250엔
- 영업시간 09:00 ~ 22:00
- 휴무일: 연중무휴
- 15 ~ 20분 간격으로 운행
나가사키 시내버스 경로 & 시간 검색 방법
버스 검색 사이트에서 한국어 자동 번역 후 출발지, 도착지에 일본어 또는 한자를 입력하면 된다.
만약 이 부분이 어렵다면 現在地・ランドマーク(현위치ㆍ랜드마크)를 눌러 지도에서 선택을 누르고 출발지와 목적지를 누른 후 해당날짜와 시간을 선택 해 검색하면 된다.
- 나가사키역(長崎駅)
- 로프웨이마에(ロープウェイ前)
- 이나사야마코우엔(稲佐山公園)
- 마츠가에곳사이터미널(松ヶ枝国際ターミナル): 그라바엔에서 가까운 버스 정류장
- 마츠가에곳사이터미널 정류장에서 로프웨이마에 정류장까지 환승없이 4번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지만 이나사야마코우엔 정류장은 환승해야 하며 나가사키 역으로 노면전차 또는 버스로 이동 후 환승하는게 좋다.